딸아이가 여고생이 되었다
열일곱
이 향긋한 봄같은 향기 폴폴 풍기는 곱디 고운 딸아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여고생이 된 것이다
애비로서 이 얼마나 가슴 설레고 기쁜 일인지,
멋지게 교복 차려입고 거울 앞에서 오랜 시간을 머무는 아이를 보며
내 가슴은 왜 이리도 벅차오르는지.....
어제
난 내가 품었던 설레임과 딸아이가 그리도 오래 거울 앞에서 단장을 하던 모습들이,
막 피어난 봄꽃같은 희망들이 처절하리만치 무너져 내리는 모습 앞에서 그만 슬픈 술을 홀로 마셨다
회상(回想)/2006/3/6/월요일
새벽 5시 50분
딸아이의 모닝콜이 요란하다
부시시 잠깨어 그래도 엄마 아빠 새벽 단잠 깨울까 조심조심 제 방문을 열고
욕실로 향하는 딸아이의 졸린 걸음이 보인다
'여보, 일어나야지. 소라가 깼네요. 아침밥 챙겨야지'
밤 늦게까지 이런저런 일로 자정을 넘겨서야 자리에 든 아내 어깨를 흔들었다
'그래요? 몇신데요?'
아내가 고단한 몸을 이끌고 부시시 깨어난다
미역국을 끓이고 계란말이를 하고 참치랑 반찬 몇 개를 차려
아침을 먹인다
이른 새벽에 넘어가지 않는 밥을 꾸역꾸역 먹는 딸이 왠지 안쓰럽다
07 : 00
묵직한 가방을 둘러메고 아이가 현관을 나선다
모 학원 차로 등교를 시키기로 게약을 하고 30 여 명의 여고생들이 새벽을 달려 등교를 한다
이른바 0교시 수업.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
0 교시 수업을 하는 나라말이다.
아내와 함께 퇴근을 하며 마트에 들렀다
아이에게 먹일 과일이랑 빵을 사서 아이 학교로 향했다
18 : 30 분
학교 앞에 승용차들이 길게 길게 늘어져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10 여 분
딸아이의 전화다
"엄마, 오늘 야자 첫날이어서 빠지면 안된대요. 9시 30분에 끝나니까 그때 다시 와주실래요?"
차를 몰아 막히고 막힌 도심에서 스트레스를 받다 7시를 훨씬 넘겨서야 집에 도착했다
부랴 부랴 밥을 대충 먹고 청소도 하고 가져온 일을 처리한다
21 : 30
다시 학교앞 골목
아내와 둘이서 말없이 차안에 앉아 딸아이를 기다린다
기다리기 지루해 난 학교로 들어서는 골목까지 걸었다
10시가 다 되어 한무리의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쏟아져 나온다
하늘이 까맣다
이제 막 여고생이 된 열일곱 꽃들이 까아만 얼굴로 구정물처럼 쏟아져나온다
가로등 아래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나?
"아빠~~~"하고 아이가 손을 흔든다
아이를 차에 태워 집으로 향했다
학원차들의 행렬이 길게 길게 늘어져 여고생들을 태우고 또 다시 어디론가 향한다
"아빠, 쟤들은 학원으로 가서 밤 12시 30 분에 끝난대요"
집으로 돌아왔다
밤 10시 20 분
아이에게 과일이랑 간단한 간식을 먹였다
(점심과 저녁은 학교에서 급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가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공부를 하러 들어가는 것일테다.
세상에~~!!
0 교시 수업부터 시작해서 <야자>까지도 모자라
하루를 넘기는 심야까지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팽개치는 나라
다들 바보같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나라
교육은 실종되고 입시만 지옥처럼 버티고 잇는 나라
이런 나라
대한민국 말고 어디 또 있을까?
베란다로 나갔다
학원차들만 분주히 까아만 얼굴을 한 아이들을 실어나르고 있었다
등푸른 우리 열일곱 고운 꽃들이
펴보지도 못한 채 시들고 있는 풍경이 슬퍼도 슬퍼도 너무 슬펐다
난 밖으로 나갔다
그냥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술을 마셨다
그래도
슬펐다.
우리 고운 소라의 하루가 어쩜 이리도 잔인한지,
애비로서 얼마나 미안하던지.....
이제 달랑 하루 했을 뿐인데......
아,
난 매일 술 먹어야하나?
슬프다.
대한민국이 슬프다
2006.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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