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그날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쉬는 날이면 으레 잠도 쉰다
이상하다
나는 가벼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새벽산책을 즐기는 애막골로 향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인도(人道)한쪽 길게 팔 것들을 늘어놓고
성실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4월 29일은 아들 생일이었다
열일곱에 시작된 기숙사 생활(벌써 7년째이다)로 인해
제대로 된 생일상 한번 차려주지 못한 미안함이 발동을 한걸까?
"여보,이번 기영이 생일엔 대전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마침 놀토고하니....."
애막골 산책을 마치고 새벽마다 열리는 '애막골 번개시장'에서
이런저런 과일을 샀다
지난 설 이후 만나지 못했던 아들에게 싱싱한 과일을 먹이고 싶었다
"아빠, 이슬이도 같이 가면 안될까요?"
" 이슬이도?"
이제 곧 만난지 1년이 되어가는 아들의 여자친구 이름이 이슬(가명)이다
이슬이는 우리식구들에게 무척 익숙한 이름이었다
아들의 홈피에서 둘의 동정을 수시로 보고 받았고 전화도 여러차례 주고받았으며
내가 써준 편지도 두어차레 받아본 이슬이었다
물론 아들 기영이도 이슬네 부모에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교제한다는 사실을 이미 다 보고드렸고 이슬이 부모님을 만나 인사도 드린 처지였다
"그러려무나, 이슬이가 불편해 하지 않는다면 같이 가는 것도 좋을듯 하긴한데..."
집으로 돌아와 과일을 담으며
아내도 나도 내내 가슴이 벌렁거렸다
"아빠. 이슬이도 같이 가고 싶대요"
아들의 전화가 다시 걸려온 것은 내가 여정표를 다 그리고 났을 때였다
우리 가족은 해마다 여름과 겨울 가족여행을 떠난다
비록 여행지는 늘 국내로 한정되었지만
우리나라 이곳저곳을 엄마 아빠, 아들 딸과 함께 여행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한방에서 넷이 같이 잠도 자고...
그럴 때마다 난 여행일정을 담은 지도를 그린다
이번 여행도 어김없이 난 우리집만의 여정표를 스케치 했다
시험준비로 이번 여행을 함께 하지 못하게된 딸 소라를 외할머니댁에 데려다 주었다
소라한테 미안했다
시험보다 여행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을 해보았지만 소라는 강력하게 거절했다
하는 수 없다
우리끼리 출발이다
중앙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
유성 I.C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갑천을 끼고 자리한 아들 학교에 도착했다
과외를 끝내고 학교로 오고 있다는 아들의 전화다
블로그를 통해 알게된 異緣님께서 언젠가 올려주셨던
목련꽃 흐드러지게 핀 그 벤치에 앉아
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그 사진이 바로 이 자리일 줄이야 !
아들이 택시에서 내린다
설때보다 많이 핼슥해졌다
마음이 잠시 아리다
아들을 내차에 태워 아들 기숙사로 향했다
간단하게 꾸린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여학생 기숙사로 차를 몰았다
"아빠, 저기 이슬이!"
이슬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슬이와의 첫 상면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슬이도 기영이도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행복과 사랑이 온몸에 발갛게 번지고 있었다
내 나이 스물셋 때가 불현듯 떠올랐다
가만......그때 내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랬었지
사랑과 이별을 하고 밤마다 조용필의 노래를 들었었지
하하하...
신태인을 빠져 부안으로 향하는 길
청보리 일렁이는 김제평야의 너른 들을 지나 새만금간척지로 접어들 무렵
야~!!
아내도 나도 두 청춘남녀도 탄성을 지른다
황홀한 일몰이 시작되려고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변산반도
해넘이가 장관인 바로 그곳
그곳에 우리 넷은 섰다
아!
장엄도 하여라
장엄하다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의 장엄함 앞에 마냥 숙연해졌다
아들과 이슬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만히 섰다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낙조만큼 발갛다
'아들아, 그리고 이슬아,
부디 사랑스러운 사랑을 하거라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을 하거라
사랑만큼 사랑스러운게 없단다'
붉게 물든 갯벌을 나란히 걷는 아이들에게 애비의 사랑학을 들려주었다
아들도 이슬도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들은 바다회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내가 아들의 생일기념 여행지를 굳이 이곳 변산반도로 정한 이유 중의 하나가
폼나는 횟집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아들이 좋아하는 회를 실컷 먹이고 싶어서이기도하다
물론 아들의 여자친구 이슬이에게도
평생 잊지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기에 딱 좋은 곳이기도 해서이지만....
바다가 어둠 속으로 묻혔다
황홀하리만치 아름답던 낙조의 분신(焚身)도 끝이났다
금강산도 식후경
숙소를 정하고 밤바다가 보이는 횟집으로 들어갔다
메뉴판 맨 위의 것을 시켰다
VIP 모둠회란다
정말 메뉴 중의 VIP였다
건배를 했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의 생일과 아름다운 이슬이를 위하여~!!"
행복하다
마구마구 행복했다
난 왜 그날 밤 그렇게 마구마구 행복했을까?
여행 둘째날의 일정을 살핀다
격포항,채석강,내소사,곰소항,고창 선운사
대전을 들러 아이들을 내려주고 춘천까지 가려면 서둘러야한다
맛있게 끓인 김치찌개로 아침을 가볍게 먹고 격포항으로 향했다
내 마음 속에 신비스럽게 간직된 채석강을 보기위해서다
아니 우리식구는 이미 보았으니 이슬이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란 표현이 맞겠다
아니나 다를까?
이슬이의 감탄이 게속된다
"우와~!!우와~~!!"
해안선을 따라 여유롭게 이어진 도로
그 도로 위를 달리며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에 우리 넷은 너무 행복했다
사랑이 있고
꿈이 있고
게다가 아름다운 경치까지 함께 하니 이 얼마나 행복한 여행이란 말인가?
내 옆자리에 앉은 아내도 어느새 이슬이와 허물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치 남이 보면 딸로 착각할 정도로 .....
곰소항을 눈앞에 두고 눈부실 정도로 노란 유채꽃밭이 우리들을 멈춰 세운다
부안 여기저기에서 만난 유채꽃이었지만 이번엔 그 수준이 달랐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너무 대단했다
그냥 지나칠 우리가 아니다
또한 사랑스런 우리 아들이랑 이슬이가 뒤질세라
노오란 유채꽃밭 속으로 폴작 빠져든다
얘들아~! 여기~~~~
꽃이다
정말 예쁜 꽃이다
우리 부부의 20대를 보는 것 같아 마구마구 행복했다
내소사와 선운사가 남았다
하지만 난 여기쯤에서 우리들의 여행이야기를 멈춰야겠다
오늘 다시 글과 사진을 올리며 숨이 턱~!! 멎는 느낌을 받았다
곱디 고운 사랑 앞에서 난 더 이상의 말은 군더더기임을 깨달았다
사랑만큼 사랑스러운게 있을까?
아이들의 꾸밈없는 노란 사랑을 보며 난 다시 두아이가 사랑스럽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힘든 공부를 잘도 참아가며 그들의 꿈을 향해 당당하게 나아가는 아이들이
마구마구 자랑스럽다
아들아,
그리고 이슬아
엄마 아빤 너희들의 사랑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만 아무말도 할 수 없구나
여행 중에도 말했듯이
참으로 사랑스런 사랑을 하거라
참으로 예쁜 사랑을 하거라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진정 사랑스럽게 하거라
엄마 아빠는 너희들의 예쁜 사랑에 고운 박수를 보낸다
내소사 경내의 느티나무
선운사 동백나무 숲 아래에서
참 좋은 여자 혜숙
참으로 예쁜 아내 혜숙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내 베란다 카페에 앉는다
그리고 여전히 미산을 꿈꾸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슬에게도 미산이야기를 해주었다
미산이 참으로 멋있을 것 같다고 옹알거린다
'그래. 이슬아
미산은 이름 그래로 아름다울테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저 구절초처럼 어우러져
물과 구름과 바람처럼 흐르며
강의 노래를 부를테다
훗날
인연이 되거들랑 오래오래 머물며 미산의 노래를 들어보렴
내
별 반짝이는 겨울날
벽난로 이글거리는 창가에다 구절초차를 내마
눈왔음 참 폼나겠지, 그날?'
2007.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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