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아이는 고3이다
가장 아름다워야할 청춘을 가장 고달프게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3들
이른 아침부터 등교해 세상 어느 나라에도 없는 0교시 수업을 시작으로
말도 이상한 야자(야간자율학습)까지 끝내고 나면 파김치가 되고만다
그걸로 끝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학원으로 독서실로....공부 공부 공부
죽을놈의 공부.
우리 딸아이는 <야자>를 하지 않는다
남들처럼 밤 10시가 넘도록 숨 턱턱 막히는 교실에서
<자율>이란 탈을 쓴 <타율>로부터 이미 고3 초에 해방되었다
6시에 정규 수업이 끝나면 정확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다고 학원을 다닌다거나 과외를 받지도 않는다
녀석은 자유롭다
남들 교실에서 <열공>하는 시간
울 딸은 제가 좋아하는 첼로공부를 한다
첼로가 있는 작은 방에서 딸아이가 연주하는 첼로소리가 들려온다
전보다 많이 익었다
제법 그럴듯하다
아마추어인 내가 듣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작은 체구에 부여안은 첼로가 힘에 부치다
'뭘 해줄까? 소위 고3 수험생을 위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두리번 두리번...
몇일 전 장인어른 생신 때 처제가 나눠준 가래떡이 보인다
'그래, 떡꼬치를 해볼까?'
떡을 꺼내 해동하고
나무젓가락을 깎아 끝을 뾰족하게 다듬는다
엉터리 미산표 소스가 만들어지고
먹기좋게 자른 가래떡에 나무젓가락을 꽂고
쏘스를 솔솔~~~솔솔~~~
아내가 소파에서 빙그레 본다
다 되었다
"소라야, 아빠가 만든 떡꼬치 먹고 해"
"음~~맛있다
정말 맛있어요
아빠도 드셔보세요"
"너나 많이 먹으렴"
고3
맘껏 꿈을 키우고 낭만을 먹으며
고운 추억으로 장식해야할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핏기가 없다
문학이며 낭만
멋과 운치를 모르고 오로지 공부..공부...공부
그 얼어죽을 놈의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제도에 갇혀
아름다운 10대를 낭비하는 청소년들이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개떡같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인이니...
다시 방에서 첼로소리가 들린다
딸아이가 남긴 떡꼬치 하나를 슬쩍 들어 입으로 가져간다
'오 ! 제법 맛이 있는 걸~~!!'
"여보 우리 나중에 떡꼬치 전문점 낼까?"
몸이 안좋아 근 보름을 고생한 아내가 장난스레 말을 건넨다
엊그제 우리 가족은 춘천시립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엘 다녀왔다
다른 고3들 <야자>할 시간
우린 아름다운 음악의 향기에 취해 두어시간 황홀했다
난 우리 딸이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되를 바라지 않는다
아니, 그럴 재주도, 능력도 없다
그냥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 무언가에 푹 빠질 수 있는 일
그게 소라에겐 첼로이기에 우리 딸아인 행복할게다
우리 딸 아이가 서고 싶어하는 곳
바로 저기 저 자리다
딸아이가 연습을 끝내고 제방으로 간다
공부를 하러 가는게다
난 아내를 이끌고 안방으로 간다
"소라야, 엄마 아빠 먼저 잘게
불 끄고 자"
"네에~~ 안녕히 주무세요"
여보 ~~!
우리, 고3수험생을 둔 부모 맞아요?
벽시계가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2008.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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