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 알콩달콩

커피 잔에 달을 타서 마시던 날

구절초 시인 비사랑 2022. 9. 23. 11:08

직장 동료가 어제 밤낚시로 재미를 보았다는 말에 욕심이 발동.
지렁이 지렁지렁 옆에 차고 낚싯대 둘러 메고 내린천 상류로 향했습니다.
머릿속엔 깔닥메기,퉁가리,어름치,꺽지,쉬리,똥고기....
그리고 얼큰한 매운탕에 소주 한 잔.
먹지 않아도 배 부를 만큼 내 머릿속엔 온갖 풍성함으로 그득했지요.
그래서 누군가가 그랬나봅니다.
'착각은 자유'
'떡 줄 놈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고

내 상상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고기가 담겨야할 망에는 실망만 그득 담긴 채 어둑어둑한 시골길을 따라
내 잠자리로 향합니다.

돼지고기 생삼겹으로 배 든든히 먹은터라 딱히 할 일도 없고
배 깔고 눕자니 너무 이르고 티비 보자니 따분하고......

전화라도 할까?
'여보세요?'
아내에게 전활합니다.
일상적인 대화.
'내일 갈까?'
'피곤하면 오지 말아요'
'내일 계방산 가는 것 연기됐어.그래서 갈게'
'그럼 오세요'

아내의 목소리에 그리움이 없다.
사랑이 안뵌다.
세상에!

하늘을 봅니다.
별이 밝게 나폴거립니다.
달이 휘엉청 온달을 꿈꾸며 탱탱 물이 오릅니다.
아!
내 사랑스런 카페에 부르스타를 내놓습니다.
주전자에 물이 보골거립니다.
찻잔에 커피를 붓습니다.
달도 함께 넣습니다.
커피 잔 속에 달이 당실 떠오릅니다.
천천히 흡월정하듯 달을 마십니다.
내가 달이 됩니다.
내기 밝게 피어 오릅니다.
하늘로 올라 날 봅니다.
시인을 꿈 꾸는 난 미산(美山)에 있습니다.

난 시인이어야 합니다.
남 시인일 겁니다.
이태백이 빠져죽은 강처럼, 달이 담긴 찻잔에 빠져죽을 난,
시인 이렵니다.

2003. 5. 13 [詩가 자라는 뜨락]에 앉아 휘엉하니 밝은 달 보며 아름다운 커피 마시다. 커피 둘,크림 둘,설탕 둘 아닌 커피믹스

 

2005.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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