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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머리를 염색하며

아내 나이 마흔 여덟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어쩌면 부록같은 인생을 살아가는지도 모를, 그런 나이가 되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 내 사랑하는 아내로, 며느리로 ,자식으로,직장인으로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아왔고 살아갈 내 아내 김혜숙 어제 퇴근길에 할인매장 화장품 코너를 지나다 문득 머리 염색약에 내 시선이 머문다. 아내 손을 이끌고 진열대로 다가선다. 어느새 부록같은 인생을 사는 아내 머리가 희끗희끗해졌구나. 아! 저녁을 먹고 거실 한가운데 신문지를 넓게 깔았다. 염색할 채비를 모두 마치고 아내와 난 거룩한 자태로 무슨 의식을 치르듯 정좌했다. 스님들 삭발식을 하듯 염색약을 아내의 희끗한 머리칼에 살포시 칠을 하고는 골고루 골고루 갈색을 입혔다. 아내의 머리가 그렇게 하얘졌는지 몰랐다. 부끄러운 남편이다..

속초엔 눈만 내리고

'여보, 울 이쁜 딸 저러다 노랑병 들겠어요' '그래, 그렇지? 어디 바람이라도 좀 쐬러갈까? 바다, 어때?' "아빠,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는?' "당연히 모시고 가야지" "이 양반이 눈치도 없이 애들끼리 가라고 하지 따라나서지 뭐니?" 장모님께서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며 장인어른을 탓하신다 춘천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날씨가 인제 원통을 지나 용대리를 지나면서부터 눈이 잘게 잘게 내리기시작 하더니 미시령 터널이 가까워지자 앞이 안보일 정도로 드세게 퍼붓는다 마침 앞서가는 제설차 바로 뒤에 붙어 조심조심 속초시내로 들어선다 동명항엔 발 묶인 어선들이 가난하게 일렁거리며 어지럽게 내리는 눈만 맞고 갇혀있었다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눈이 되고 눈이 파도가 되는 정경이 아름답다 눈밭으로 올라온 빈배..

어떤 여행

아주 오래된 습관 주말 저녁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찾는 이도, 찾아오는 이도 없는 처가엘 가는 일 외로운 시간 더불어 말벗 해드리는 일 어르신들 모시고 비싼 음식은 아니어도 식사 한끼 같이 하는 일 음식점 명함 하나 더 아버님 지갑에 넣어드리는 일 (장인어른은 오래전부터 함께 찾았던 음식점의 명함을 모으시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 [강원도 화천 파로호 전경] "아버님, 뭐 하세요?" "그냥 있지 뭐" "누구 온다는 사람 있어요?" "없어" 일요일 아침 모처럼 산행을 하지 않고 장인장모님을 모시고 늦었지만 그래도 남아있을지 모를 가을단풍을 찾아 길을 나섰다 '어디로 갈까?' 잠시 생각을 하다 아버님의 고향이신 화천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퇴행성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 고향 그리워하시는 마음 내 어찌 모..

아들에게

모처럼이다 모처럼이기로하자 아들아 [춘천~~부산/ 자전거 일주 중......아마 2004년??그치? } 녀석 고맙다 아들아 전화 목소리 튼튼하더라 고맙다 녀석 [ 춘천 - 부산 일주중 동해에서....] 장하다/장하다 그러다 말야 아빠가 멋지다 멋지다 녀석 참 멋지다 그랬다 아니? [춘천...부산 자전거 일주를 마쳤다. 멋지다, 울 아들......] 이제, 아들아 아빠가 묻는다 사랑이 무슨 색이냐? 아들아 사랑이 무슨 병이냐? 그래, 네 사랑을 사랑한다 아들아, 아파하지 말거라 사랑은 말이다, 아들아 사랑이란다 아들아 산 같은 아들아 사랑은 말야 다시 사랑은 말이다 아빤 산 같은 사랑이었음 좋겠더라 말이다 저녁놀 붉게 물드는 자락 그러게 말이다 느릿느릿 늬 사랑일랑 내 사랑 버물버물.... 아빠가 詩 하나..

아들의 여자친구와 함께 한 가족여행

4월 28일 그날도 어김없이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쉬는 날이면 으레 잠도 쉰다 이상하다 나는 가벼운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새벽산책을 즐기는 애막골로 향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인도(人道)한쪽 길게 팔 것들을 늘어놓고 성실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4월 29일은 아들 생일이었다 열일곱에 시작된 기숙사 생활(벌써 7년째이다)로 인해 제대로 된 생일상 한번 차려주지 못한 미안함이 발동을 한걸까? "여보,이번 기영이 생일엔 대전으로 가는 게 어떨까요? 마침 놀토고하니....." 애막골 산책을 마치고 새벽마다 열리는 '애막골 번개시장'에서 이런저런 과일을 샀다 지난 설 이후 만나지 못했던 아들에게 싱싱한 과일을 먹이고 싶었다 "아빠, 이슬이도 같이 가면 안될까요?" " 이슬이도?" 이제 곧 만난지 1년이 되어..

여보, 사랑해

1984년 12월 23일 그리고 2006년 12월 22일 김헤숙이란 여자랑 왕은범이라는 사내가 하나 되었다 꽉 찬 22년 그 새 잘난 아들 하나 이쁜 딸 하나 너른 집 한 채 사랑으로 그득 채운 친구 윤호의 표현대로 를 이루었으니 여보 고맙구랴 수고한 그대에게 따뜻한 귀엣말 전하오 '다시 또 사랑한다, 혜숙아 사랑만 한다' [2006.12.22] 美山인 당신의 남편이 결혼기념일 전날에 드립니다 [아내에게선 은은한 구절초 향기가 난다/진정 이다] 내일은 우리 부부가 하나된지 꼬박 22년 되는 날입니다 결혼 기념일인게지요 실로 오래간만에 집에 오는 아들이랑 공부하느라 지친 딸이랑 태백산으로 東海로 짧은 여행 떠납니다 한 이틀 비울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우리의 결혼기념일 축하 많이 해주실거죠? ****..

아들, 집에 오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여기저기서 피해가 속출한다 걱정이다 비 피해는 언제나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에게만 찾아든다 안타깝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대전 학교 기숙사에 머물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춘천으로 오라고, 더 이상 그곳에 머물러 있는것은 무의미하다고, 1시 차로 올라오겠단다 드디어 아들이 오는구나 오후 4시경이면 춘천에 도착할 예정이란다 그렇구나. 3년 전 여름 달랑 자전거 한대 이끌고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하이킹을 다녀오던 날처럼 꼭 그날의 기분을 안고 우리 셋은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비밀 프로젝트 ~! 복사용지(B4)를 길게 이어 현수막을 만들었다 환영이란 글씨를 쓰고 아들의 일정에 따라 지도를 그렸다 쓰윽 쓰윽 그려대는 아빠의 모습에 딸이 놀란다 "우와~~..

울아들 지리산 종주 생중계(完)

엄청난 폭우다 와이퍼를 최고로 틀어도 미처 닦아내지 못하는 빗물 생전 처음 겪는 폭우를 헤치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 천왕봉 다녀와서 지금은 중산리 그 식당이에요" 아들은 아빠의 말을 기억했나보다 오늘 하루를 함께한 형들에게 막걸리를 대접하고 있단다 녀석,돈도 없을텐데..... (울 아들은 춘천에서 떠날 때 수중에 현금 12만원 뿐이었다) 암튼, 뜨거운 땀 흘리고 나누어 마시는 막걸리, 돈이 무슨 상관이랴 ! 엄청난 폭우를 뚫고 춘천에 도착, 아들에게 여비를 송금했다 "아빠,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중산리 계곡.....2005년 8월) 아들이 준비해간 식량이랑 돈이 바닥이 났다 비로인해 연장된 산행. 준비해간 식량도 바닥나고...... 그러나 역시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달랐다 아들을 불러 ..

울아들 지리산종주생중계(2)

지리산 !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큼지막하게 자리잡은 山/靈山 그 지리산의 품에 안겨 울아들은 사흘 째 살고있다 어제는 세석대피소에서 잠을 잤단다 짙은 운무에 잠긴 지리산의 장엄함에, 등골을 서늘하게 해주는 골바람에 아마 아들은 경건하게 기도했으리라 원시의 토테미즘 같은 , 동행한 아저씨들이랑 삼겹살에 소주도 몇 잔 얻어마셨는지, 아들의 목소리가 풀렸다 "아빠~! 너무 재미있어요. 사람들이 다 좋아요" 그래, 아들아 만일 함께 하산한다면 시원한 막걸리라도 대접해드리렴 아들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체험했다 혼자 산에 올라 여럿이 되는 법을 배웠다 겸손도, 절제도, 예절도...... 오늘 새벽 3시 반 어제 함께 삼겹살에 소주를 나눠마시던 아저씨들이 아들을 깨웠단다 다시 산행 떠나자고..... 아들은 피곤함이 ..

울아들 지리산종주 생중계(1)

울 아들 성명 : 왕기영 소속 : 대한민국 신체건강한 청년(모 대학 4학년) 아들이 그저께(7월11일) 비 내리는 길을 나섰다 30 여 킬로그램 쯤 나가는 배낭을 메고 지리산으로 떠난 것이다 아들의 길 떠남을 말릴까 하다가 그냥 뒀다 몇 일을 준비하고 계획하고 예약하고....... 태풍과 장마로 어수선한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내기로했다 난 울 아들을 알기에.... (녀석은 이미 중학교 때 춘천에서 인제까지 3박4일 일정으로 하이킹을 두 차레 다녀온 적이 있고, 작년에는 춘천에서 태백산맥을 넘어 양양 강릉 삼척 울진 영덕 포항 경주 부산까지 자전거에 묵직한 배낭 싣고 1주일여 노숙하며 다녀온 경험이 있기에 이번 산행도 그저 믿고 떠나보낼 수 있었다) 첫날 춘천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 진주,지리산 화엄사..